하루하루는 지루한데......

by 석이엄마 posted May 19, 2004

우와 벌써
5월 하고도 20일이 훌쩍 다가왔네요.
아직은 이계절이 주는 상큼함은 느껴 보지도 못한 채 이상하게 흘러 가고 있지만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던데....

예전에 울엄마가 늘상 하시던 말
'하루하루는 이래 지겨운데 무신 날이 이래 훌쩍훌쩍 가노?'
10대에는 10Km의 속도로 삶이 지나가고
20대는 20Km.....
고로 저는 지금 46Km의 속도감을 느끼며 삶을 관통하고 있다는 얘긴데
오히려 60Km쯤의 속도로 가버리기를 바라고 있음은...?

결혼생활이 20년 넘어 가는 요즘
사실 스스로 진단한 결과에 따르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중이랍니다.
지난 12월부터.
하루 24시간도 모자랄 지경으로 순전히 집안 살림과 전쟁을 하며 살아 왔더랬는데
죽음과 맞딱뜨리게 될 때를 생각하며 여한이 없도록 하고싶다며 열과 성을 뿌리며 주변도 살펴 왔더랬는데

주변의 사람들은 얘기합니다.
뭐가 그리 답갑한거냐고.
아이들 둘 이쁘고 정신까지 건강하게 잘 자라 주고 있고
남편은 비록 굴곡이 있다해도 가장역할 잘해내 주고 있고
뒤늦게 시작한 공부도 열매를 맺어 별건 아니지만 시간강사까지 하고 있는데....
삶이 뭐냐? 왜 이리 지루한거냐...? 라는 헛소릴 하느냐고 하지요.

겉으로 드러나는 이유라고 굳이 나열한다면
공부 잘한다며 12년간 거의 '수'를 휩쓸던 딸이 수능에서 큰 실패를 경험한 것,
그리하여 서울에 있는 학교에 수의과나 약대를 가겠다는 목표를 쳐다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 것,
연년생인 아들이 또 고3이 되는지라 같이 재수를 시키고 싶었으나
기집애니까 지방의 국립대공대도 괜찮은거라 얘기하는 아빠에게 설득되어
부산서 서울가는 길목인 대구에 그냥 떨어뜨려 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통통 튀며 살아야하는 나이에
시골 수재들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속에서 적응해 가고 있는 딸아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

아이들 키우면서
딸아이는 특히 키우기 쉬운 아이였습니다.
떼쓰는 법 한번 없었고
힘든 표시없이 일찍 동생을 본 탓에 엄마의 손을 붙잡지도 않았던 아이,
'엄마 찌찌 아야' 딱 한번에 젖을 뗐던 아이,
미술학원, 유치원, 학교까지도 동생 먼저 챙겨 데리고 다녔던 아이,
그아이가
이번에도
제고집없이 그냥 현실에 주저 앉았습니다.
아이 둘을 서울 사립대에 보낼 형편이 안된다는.....
해 보지도 않고서 말입니다.
한번 떼써 보지도 않고서 어른들의 분위기를 읽어 버리고선 그 길로 나서는 것을
저는 제가 힘든 것만 생각하여 그냥 뒀습니다.

아버지 일찍 돌아 가시고
엄마랑 네 남매가 살아 오면서 모두 대학나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엄마의 고집스러운 목표 덕이었는데
저에게는 그 목표가 없었던 탓이겠지요.
그엄마의 그 딸이라 하는데 저에게는 합당한 얘기가 아닌가 봅니다.
전 못난 엄마입니다.
그때의 그 고생스러웠던 기억이
몹시도 찌들렸던 그때 학창시절, 상대적인 빈곤감을 딸아이가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자위를 해봐도 시원치 않습니다.

아마 이게 제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일겁니다.
제자신, 그 존재에 대한 가치가 실종되었다고 생각함.
그러면서도
뻔뻔스럽게 다시 일어 서야 한다며 살아갈 힘을 찾고 있는 것은
아버지없이 살아 왔던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서

어떤 모습일지라도 아이들에게 옆에 있어 주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것때문입니다.

예전에 제가 자식이었을 때는
세상이 그다지 무섭지 않았습니다.
뭉쳐서 이렇게 살아 가는 것이라 단순히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이렇게 답답하고 무서운 것은
지난 시간에 계시던 엄마와 같은 보호벽이 없다고 생각되는 이유때문이 아닐까요?
제가 다른 가족들의 보호벽이 되어 줘야하는데 이리
힘빠져 헤매고 있으니.....
엄마처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엄마의 그딸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만.....
자꾸만 역부족이라고만, 힘이 없다고만, 어떡하냐고만 중얼거립니다.

남편이 있는데도
남편없이 네아이를 이나이 먹게 해준 엄마의 반도 못따라 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고3짜리 아들의 아침밥을 챙겨 주었고
늦잠많은 남편의 출근을 지켜 봤고
일어났냐며 아빠닮아 아침잠 많은 딸아이에게 문자 보냈고
이렇게
다른 사람의 아침을 무겁게 만드는 넋두리도 부지런떨며 길-게
통도사로 '서각' 이란걸 배우러 조금뒤에 떠날거고
돌아 오는 길에 학교에 들러 축제기간임에도
6월 7일로 다가온 전시회에 부산스러운 아이들 작업하는 것 들러 볼 것이고

그러나 왜 이렇게 지루한건지.....하루가?
그러나 5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병들었던 12월도 지난해가 되어 있습니다.
6개월쯤 지났으니 이젠 서서히 털고 일어 나야겠지요?
'자라' 덕분에 요즈음 일어서는 속도가 빨라 지는 듯 합니다.
누군가 제 넋두리를 읽어 주고 있다....
외면 당하지 않고 있다....
모두 서울에  있는 친구들에겐 전화로 다 쏟을 수 없는 것들도
어쩜 말이 아니어서인지 이곳에선 마음이  제법 술술 잘 풀려 나온다.

그리고 아름다운 마음들이 있더라.....
모두들 열심히 살아 가는 영혼들이 있더라....
제 아이들도 그런 속에서 그렇게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잘 되기를 바라던 제 욕심에 제가 아픈 것이니까.....

모두에게 사랑드리고 싶군요.
제가 제일 잘 하는 것으로......그게 뭘까요?